그 사람의 입장은 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한 차례 지나가려 하자
길을 터주며 말했다.
"네, 네, 지나가셔야죠!"
활기찬 말투에서
예상치 못한 삶에 대한 긍정과 겸손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앞으로 있을 경험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꼈다.
설명이 시작됐다.
"평소에 사진 찍기 힘드셨죠? 이제는..."
내 앞에 있던 두 대학생은 자리를 옮겼다.
"야, 딴 데로 가자. 다른 칸."
'에구, 파는 사람도 들었겠네.'
나는 생각했다.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많던 나는
듣다가 고개가 돌아갔다.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니
오늘의 상품은 다름 아닌
'셀카봉'.
"시중에서는 이만 원에서 사만 원 정도 주고
구입을 하시는데요.
아주 저렴하게 사도 만 삼천 원은 줘야 합니다."
'흠.. 그래서 만원 정도라고 팔겠지 뭐.
나는 예전에 노상에서 떨이로 육천 원에 샀었는데.'
"... 오늘은 아주 저렴한 가격, 오천 원입니다!"
'음? 생각보다 싸네? 뭐, 싼 중국산 제품이겠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 사람의 모든 말에서
삶에 대한 굉장한 긍정과 기쁨, 겸손이 느껴졌다는 것.
'저런 일을 하는데도 마음가짐이 대단하시구나...
전엔 이렇게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계속되는,
홈쇼핑을 능가하는 마케팅 퍼레이드.
여러 가지 접근으로 이루어진 짜임새 있는 설득,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쉬울 듯한 사용법 설명,
(내가 사는 제품 매뉴얼 좀
저렇게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실제 그의 잠재고객인 듯했다.
손자 사진을 어필하시는 걸 보니...)
적절하고 다양한 시연.
정말 훌륭하기 짝이 없는 단시간 스피치였다.
'마케팅을 전공하진 않으셨겠지만 이미 전문가시구나.
요새 누가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연달아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설명을 위해 수반되었을 수많은 노력과 연습,
고되었을 시간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매 순간 오죽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두 손바닥으로 애써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많이 듣기 싫었나 보네... 어휴, 매번 이런 관중들 앞에서...
대단한 용기다. 나는 죽어도 못해!'
"감사합니다!"
한 사람이 물건을 샀나 보다.
'저것도 미리 짜 놓은 거라고 하던데...
아마 그 사람이겠지...
관광지도 아니고 누가 저걸 살까?'
그런데 연이어 들리는
"감사합니다. 멋진 사진 찍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한 대여섯 개는 판 것 같다.
'저 사람들이 다 미리 손을 쓴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효과가 있나 보네...
과연 저 사람들은 파는 사람 말에 필요해서 산 걸까...
아니면 동정심일까...'
'음.....'
나는 그 사람을 본 순간부터 내게 끝없이 밀려들었던
편견과 의심, 그리고 은근한 무시, 이 종합세트가
내 맘속 한켠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부끄럽고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철컥대며 다른 칸으로 가는 뒷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덕분에 오늘도 배웠어요... 감사해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말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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